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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어머니를 지칭하는 계모는 우리 사회에서 악녀처럼 묘사되고 있는 대표적인 존재다. 부계 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족제도 탓에 주로 부정적인 측면이 크게 부각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설화인 '콩쥐팥쥐전'은 전통적인 계모관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고대소설 '장화홍련전'에서는 심성 사나운 계모 허씨에 의해 학대받은 두 자매가 죽게 된다. 그림 형제가 수집한 독일 동화에는 계모에 의해 헨젤의 동생 그레텔이 산에 버려지는 내용이 등장한다. 유럽 동화 '신데렐라'는 여주인공이 계모에게 학대를 받다가 친어머니의 영혼이 도와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백설공주'에서는 마음씨 나쁜 새 왕비와 살면서 아름다운 공주가 고난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대하소설에서도 계모는 대개 아름답지만 시기와 질투가 많은 인물로 그려진다. 남편의 판단력을 떨어뜨리는 말을 하거나, 착한 전실 자식을 위협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집착성을 보인다. 계모는 또 본처의 딸을 팔기도 하고, 자신의 아들보다 나은 본처의 아들을 모함하기도 한다. 집안의 권한을 쥐게 되면 그 권한을 이용해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이렇듯 동서양에서 계모를 바라보는 입장에는 큰 차이를 찾기 힘들다.
울산시 남구 야음동에서 사라졌던 6세 소년이 계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지난 12일 밝혀졌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수 차례 폭행했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경주로 옮겨 폐드럼통에 넣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를 두 번씩이나 죽인 계모는 마음이 고장난 사이코패스(Psycho- Path)나 다름 없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식스센스'(The Sixth Sense·1999)에서 바닥 세척제를 오랜기간 음식에 타먹여 의붓딸을 죽이는 계모의 잔인함을 섬뜩할 만큼 빼닮았다. 경찰은 "아들이 오락을 하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는 허위 실종신고를 토대로 전국에 실종경보까지 발령했었다.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한 뒤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꼈다면 그토록 태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싶다. 부모의 이혼으로 남모를 아픔을 간직했을 아이를 더 사랑하고 감싸주어도 모자랄 판에 인륜을 스스로 저버린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평소에도 여섯살배기 아이를 학대해온 상황이라면 누구도 이해시키기 힘든 일이다. 한창 미운짓 할 시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어찌 감정적인 잣대로만 대했을까. 이번처럼 파렴치한 잔학성으로 인해 실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더욱 고통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아이가 없어져 실종신고를 하고 싶어도 경찰이나 이웃주민들이 자신들을 먼저 의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지나치게 계모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란 말도 있다. 계모가 오히려 친모보다 더 다정하고 좋은 경우도 있다. 전실의 자식을 더 아끼고 사랑하려는 계모들이 본의 아닌 피해를 입을 게 뻔하다. 이혼이 늘고 재혼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계모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릴 때다. 지난해에는 울산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 중 35.5%가 친모학대라는 조사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아동학대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시각이 바뀌었으면 싶다. 결과론적으로 그 아버지는 아이가 구박당하는 것을 말리지도, 막아주지도 못했다. 전처 자식을 제 자식 못지않게 잘 키우겠다고 약속하거나 서로 믿고 결혼했을 것 아닌가. 자식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면 계모에게 한마디 충고라도 했어야 옳았다. 자기방어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엄벌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우쳐주고 있다.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갈수록 판을 친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댓글이 올랐다. '인간성을 잃고 아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세상은 시인이 죽은 사회보다 더 비참한 세상이다.'
박철종 논설위원 bigbell@ksilbo.co.kr
[2008.02.13 22: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