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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아동학대 외면하는 것 또한 '아동학대' 2010-09-30

조회수:1013

[더 나은 미래] [허인정의 미래산책]

2007년 3월. 한 기업 재단에서 공부방 어린이를 돕는 사업을 할 때입니다. 자원봉사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갈 곳 없는 아이가 생겼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울먹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문이 닫혀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며 공부방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겁니다. 술 마시는 아빠를 견디다 못해 엄마는 오래전 제 살 길을 찾아 나섰고, 석 달 전에는 아빠 역시 집을 나갔답니다. 16살 누나도 가출한 지 오래. 아이는 두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무서운 밤을 몇달이나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집주인이 밀린 월세를 핑계 삼아 방문을 열쇠로 꽁꽁 잠가버렸습니다. 집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아이는, 유일한 '의지처'인 공부방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밤 11시 반. 정신없이 달려간 선생님 품에서 아이는 원 없이 울었습니다.

결국 아이는 경기도의 한 그룹홈으로 보내졌습니다. '부모포기각서' 없이는 그룹홈에 들어갈 수조차 없어, 아이를 버리고 떠난 부모를 찾느라 주변 사람들이 한참을 애태웠습니다.

한동안 그 아이를 잊고 있었는데, 이번 미래산책 9호의 '아동 학대' 심층 분석 기사를 실으며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술 마시고 때리고 칼부림을 하는 아빠들과, 아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입지도 먹지도 못해도 관심 없는 엄마들을 '다시' 만나며 분통이 터졌습니다. 신고 의무가 있는데도 '그건 보호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외면하는 선생님들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지난 한해 아동학대의 87%가 가정 내에서, 83%가 부모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정말 가까운 피붙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눈 뜨고 유심히 지켜보지 않으면 아이들이 당하는 학대와 방임을 알아채기도 힘이 듭니다. '설마'하는 마음에 돌아선 뒤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울고 있는지 모릅니다. 작년 한 해 아동학대로 9000여건의 신고가 들어왔지만 훨씬 많은 경우가 '가족 문제'라는 이름으로 묻혔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사람도 가족이지만, 어쩌면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 가족인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때로는 천국을, 때로는 지옥을 만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어쩌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첫 번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가까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것도, 이 세상에서 배워가야 할 숙제인 듯싶습니다.

3년 전 만났던 아이에게 공부방 선생님이 그랬듯이, 지금 전국 곳곳에서 굶고 매 맞고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기대 울 어깨가 되어주고 있는 NGO 상담원들이 그렇듯이, 저도 울고 있을 누군가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어봅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