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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 현장 동행 르포] "아빠가 칼로 찌르려…집에 다시 가기 싫어요" 2010-09-30

조회수:1310

"아빠가 밥통으로 동생 때리고 절 안고 칼로 찌르려고 했어요 보호 시설로 가고 싶어요"
'네 자식이나 잘 키워라…'온전히 민간에게만 맡겨져 권한·존중은 찾아볼 수 없어
공권력에 의해 조사·보호되는 선진국과는 큰 차이 보여

"출동합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긴급 구호차량에 올라타면서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의 김경희(33) 상담팀장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 학대와 신체 학대 두 건의 신고가 들어온 참이다.

"동네 사람이 12살 여자 아이를 성추행했다는 신고예요. 가해자에 대해선 이미 조치했지만 아이가 너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어 있어서 서둘러 아이를 데려오려고 합니다. 다른 한 건은 아버지가 남매를 자주 때린다는 신고입니다. 우선 성 학대 신고가 들어온 곳부터 가겠습니다."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이 위치한 수원에서 두 시간여를 달려 한 작은 동네에 도착했다.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집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내부는 깜깜했다. 손전등으로 곳곳을 비추었지만 청소나 설거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교과서와 공책이 곳곳에 뒹굴고 있었다. 집 안 전체가 큰 쓰레기장 같다. 아이 혼자 이 어두운 집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밥 먹었느냐'고 물어보니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먹을 만한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샀는지 알 수 없는 수박만 통째로 썩어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전기가 끊긴 집은 대낮인데도 컴컴했다. 아버지의 방임, 쓰레기장 같은 집, 이웃주민의 성희롱은 열두 살 아이가 지기엔 너무 큰 짐이다.

아이의 보호자인 아버지는 옆 동네 친구 집에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은 것도 모르는 채였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 있는 아버지는 자신을 추스르기도 벅차 보였다.

"2000년 즈음에 이혼한 후로 쭉 제가 키웠어요. 혼자 키우려니 힘들죠 뭐. 몸도 안 좋아서 일도 못하고…. 머리도 자꾸 아프고 정신도 깜빡해요."

아버지는 신용 불량과 차압, 우울증 등의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다고 했다. 상담팀은 아이가 이대로 방치되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아이가 간다고만 하면 저는 뭐 괜찮아요." 아버지는 결국 아이를 시설에 맡겨도 좋다고 동의했다.

12살 여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인근 고등학교에 들렀다. 아버지한테 자주 맞는다는 신고가 들어온 15, 16살 남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매일 소주 서너 병을 마시며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이번엔 칼을 휘둘렀다. 벌써 두 번째다. 16살 남자 아이는 "아빠가 절 끌어안고 칼로 등을 찌르려고 했다"며 "시설로 가고 싶다"고 애원했다.

"작년부터 술도 더 많이 마시고 더 많이 때리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밥통으로 동생을 마구 때렸어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상담팀은 일단 남매에게 임시보호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차에 태웠다. 오빠는 몇 번이고 "다시 집에 가는 건 아니죠?"라고 물으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졌다. 취침시간이 되기 전 아이들을 그룹홈에 데려다 주려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청소년 5~6명을 한두 명의 관리자와 가족처럼 살도록 하는 제도다. 학대 피해 아동은 이렇게 그룹홈에서 일시 보호를 받은 후 보호 조치 결과에 따라 집으로 복귀하거나 장기 거주시설로 가게 된다. 이동한 지 1시간쯤 되자 아이들이 졸기 시작했다. 계속 두리번거리고 불안해하더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밤 10시. 드디어 아이들이 각각의 그룹홈으로 들어갔다. "밤늦게까지 정말 고생이 많으시네요." 상담원에게 말을 건네니 대답 대신 웃는다.

"대학 시절 교수님이 '어떤 사회복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대상자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힘들거나 지칠 때마다 그 말씀을 떠올려요. 이 아이들의 인생, 이 가족의 미래를 위해 대충 할 순 없더라고요."

겨우 하루 머물렀을 뿐인데 마치 수일간의 행군을 한 듯 지쳤다. 현장에서 느낀 답답함,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2시가 다 되도록 상담원들은 학대를 한 부모들한테 '네 자식이나 잘 키워라', '네가 뭔데 남의 집 일에 참견이냐'는 욕을 들으며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시급한 사안, 중대한 사안을 다루는 현장인데 권한도 존중도 없었다. '공권력'에 의해 현장 조사와 보호 조치가 보장받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는 너무 큰 차이를 보였다.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할하는 지역만 수원·안양·과천·군포·의왕·용인 6개 시이다 보니 길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나마 이 기관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아동이 경기도에 살고 있어 많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원을 도내에 갖추고 있다. 임상심리사 배치, 상담원의 특근수당 지급, 보호장비 구비 등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가족기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 김정미(41) 관장은 "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모의 알코올 중독 치료부터 양육법 교육, 자활훈련기관을 연결하는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런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지역 네트워크도 갖추기 쉽지 않고,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다 보니 지역 간 편차도 심하다"고 말했다.

밤늦게 퇴근하면서도 상담원들은 '기관 휴대폰'을 챙겼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24시간 대기해야 합니다. 0.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출동해야죠." 학대받는 아이들의 '내일'이 민간 위탁기관과 뜻있는 상담원들의 손에만 달려 있는 셈이다.